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그리고 종교사상가인 파스칼

블레이즈 파스칼은 누구인가?

1640년대에 수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초기 계산기인 파스칼린을 발명했고, 기압변화의 원인에 관한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의 이론을 더욱 검증했습니다. 1650년대에 파스칼은 피에르 드 페르마와 함께 확률론의 기초를 닦았고, 레 프로방칼레스 신학을 출판했습니다.

신동이었던 파스칼의 어린시절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서 네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으며 에티엔과 앙투아네트 파스칼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파스칼이 갓난아기였을 때 돌아가셨고 그는 두 여동생 길베르테와 재클린과 유난히 가까웠습니다. 그의 아버지 에티엔은 세금 징수원이자 재능 있는 수학자였습니다.

 

에티엔은 1631년에 그 가족을 파리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는 영재 파스칼을 집에서 교육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그는 비정통적인 교육과정을 디자인하고 파스칼이 자신의 타고난 호기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티엔은 파스칼이 기하학에 너무 매료되어 고전 과목에 집중할 수 없게 될까봐 아들의 초기 교과과정에서 수학을 생략했습니다. 파스칼의 교육의 시작은 언어, 특히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엔의 계획은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교과과정에서 수학을 생략했다는 사실은 12살에 기하학을 스스로 탐구하기 시작한 호기심 많은 소년에게 이 주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수학 용어를 배우지 않고 자신만의 용어를 만들었으며, 삼각형의 각도의 합이 두 개의 직각과 같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냈습니다.

마차사건

파스칼이 다시 수학에 재능을 꽃피우려는 순간에 마차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654년 말 그는 사두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말의 고삐가 풀려 마차가 다리로 돌진했고 다행히 그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이런 행운은 지독한 신도였던 그가 자기 분석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파스칼은 점점 더 신학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그는 유명한 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저술했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요절한 천재

블레즈 파스칼은 1658년에 두통에 시달리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통받았는데 두통이 멈추지 않아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럽게 4년을 지냈습니다. 비록 이 두통을 잊고자 사이클로이드를 연구하여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1662년 6월, 블레즈 파스칼은 천연두에 걸린 가난한 가족에게 집을 내주고 누이의 집에 들어가 지냈었고 같은 해 8월 19일 경련 발작을 일으켰는데 사체를 해부한 결과, 블레즈 파스칼의 위장과 중요기관들이 정상이 아니었고 뇌에도 심각한 외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찬란하면서도 고통스럽던 짧은 생애가 막을 내렸습니다.

파스칼의 명언

-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일단 이 사실이 승인되면 당장에 문호는 최선의 정치를 향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압제를 향해서 개방되고 만다.

- 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 사람은 항상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전부 부정하고 싶어 한다.

- 도박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

- 이 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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